본문 바로가기
개발 서적

[리뷰] 비트의 세계

by run() 2022. 1. 15.

개발자로 일하면서 평소에 컴퓨터 과학 분야의 책을 자주 읽고 있다. 그래서 종종 주변으로부터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한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개발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먼저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거나, 전공자에 준하는 수준의 지식을 가진 경우이다. 이들은 운영체제나 네트워크등의 전공 지식이 충분하여, 난해하거나 이론적인 내용도 잘 받아들이곤 한다. 이 정도 수준이면 내가 인상깊게 읽은 기술 서적이나, 컴퓨터과학 분야의 고전 명저들을 추천해주곤 한다. 다음으로 IT와 컴퓨터과학의 이론적 배경은 잘 알지 못하지만 최근에 관심을 가진 경우이다. 이들에게는 책을 추천하기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기술서적을 추천하자니 이해하기 힘들 수 있고, 완전히 비전공자만을 타겟으로 하는 책을 추천하자니 너무 얕은 수준만 다루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비트의 세계>는 모두에게 적극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전공자라면 익숙한 컴퓨터과학 개념을 일상속에 녹여내는 저자의 혜안에 감탄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비전공자라면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컴퓨터과학의 이론과 최신 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를 작가이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이며, 두 분야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노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제 저자는 현역 엔지니어가 아니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통찰력은 개발자와 학생들에게 충분한 영감을 제공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MS와 구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저자가 자신의 전공인 문학과 철학을 살려서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다. 자칫 무명 작가의 일대기가 될 뻔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경험과 시선을 잘 살렸다. 특히 컴퓨터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번역이 정말 잘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은사님께서는 번역서의 원서를 꼭 살펴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원서의 맥락과 표현의 정교함을 번역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비트의 세계> 다 읽고난 후 원서인 <BITWISE>도 지인에게 빌려서 조금 읽었는데, 번역의 품질이 정말 좋다고 느꼈다. 저자의 소중한 경험, 질문, 해석을 한국어로 만날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다. 

 

인상깊은 구절을 소개하며 후기를 마친다. 

 

“나는 논리와 프로그래밍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했고, 언어와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공부했다.” (p.15) 

“다시 말해서, 나는 내 자신의 언어로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만심을 버렸다. 그래서 컴퓨터가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돌리고 다양한 언어를 기계어로 번역하는 것처럼, 다양한 문제의 화법들을 받아들였다.“ (p.147) 

“언어, 그리고 우리의 언어 이용은 필연적으로 편향을 수반한다. 컴퓨터 코드 자체는 그런 편향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소프트웨어가 처리하는 컴퓨터 데이터는 삶을 반영하며, 따라서 우리의 맹점과 선입견도 반영한다. ... ... 컴퓨터는 우리 개념에 있는 틈새와 편향을 한계점까지 증폭시켜왔다.” (p.389) 

“나는 코드와 온톨로지가 포착하지 못하는 무한한 미묘함과 불규칙성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믿는다. ... ... 그것들을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p.428) 

 

해나무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